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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4 23:23

이 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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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이사 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하고 자랐다.
집은 늘 그렇게 “우리집”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했고, 아직도 고향에 가면 모양이야 변했지만 그 자리에 여전히 있다. 이제는 “고향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부모님께서는 집이 낡았는데도 극구 집 허무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시면 고쳐서 그 집에서 사시겠다고 말씀하곤 하셨는데 정말 그 집을 수리해 이사를 하기로 결정을 하신 것이다.
서울에서도 늘 땅에 대한 그리움으로 조그만 텃밭이라도 생기면 토마토며, 고추며 가꾸곤 하셨는데...
요즘 통화를 하면 고향땅 일구실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뜰떠 계신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과일나무 사다가 심고, 타조까지 키울 거라며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 엄마의 환한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흥분이 될 정도다.
그곳은 엄마가 시집가시던 19살 때부터 사시던 곳이다. 그러니까 한 30여년 넘게 살던 집이다. 그 집을 떠나 서울에서 10여년의 세월을 얼마나 많은 그리움으로 지내셨을까? 그집에서 17년 살았던 나도 그렇게 그립던 곳인데 부모님이야 오죽했을까? 생각하면 그 마음이 이해되고 남음이 있다.
나는 결혼 후 두 번째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번에도 포장이사를 했고 물론 이번도 포장이사를 할 계획이다. 마음 같아서는 내 손으로 꼼꼼히 정리를 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는 입으로 지시하는 것이 전문이질 않는가.
남편을 생각해서 비싸지만 포장이사 계약을 했다. 조금이라도 싼곳을 찾기위해 두군데 방문견적을 받았다. 둘중에 3만원이 싼 빵빵 익스프레스와 계약을 했다.
견적을 내러 온 직원은 뚱뚱한여자였다. 차드시겠냐는 물음에 커피한잔 괜찮겠냐고 어색하게 다시 물었다.
뭐 커피한잔이야 물 끓여 커피믹스 하나 부드럽게 찢어 넣으면 되는 것을…
미안해 하는 직원에게 빵빵 커피믹스를 보이며 “우리집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괜찮지요?”나도 다시 물었다.
그렇게 견적을 내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려보이시네요.”
그녀가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말이 진심인지 인사치례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불쑥 “71년생이예요.”하며 웃는다. “돼지띠시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다시 묻기 뭐해 “네. 돼지띠예요.”라고만 답했더니 “저도 돼지띠예요.”하며 웃는다.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 또 한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한 사람과의 헤어짐 이후 다른 교제를 갖을 수가 없어 혼자라며, 요즘은 일하고 돈 모으는 재미로 산다며 웃는 그녀는 편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말을 틀 수 있는 성격과 그의 직업은 딱 어울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계약을 마치고 그녀와 헤어진 뒤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2년 전셋집 살이를 하다가 처음 집을 샀을 때 내 집을 마련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내 집이라는 알 수 없는 편안함에 우리가 행복했던 3년의 시간을 뒤돌아보았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박대화 오수미의 집 우리집! 그 감격의 순간을 잊을 수도 없을 것이며 그 것을 팔아버릴 수도 없어서 이번 이사할 때 집을 팔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면서 어디 손볼데는 없는지 집안을 살피는 남편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 그리 다를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이사 와서는 속 썩이지 않은 착한집인데 혹시 이사 오시는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이사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 그 집은 신축이라 깨끗하고 시설도 무척이나 좋은 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이사는 우리 부부에게 큰 모험과 같은 일이다. 상록수 사무실을 겸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때문이다.
상록수의집 아직 이름을 확정 짓지는 않았지만 상록수를 대표하는 곳 컴퓨터와 문학등 교육장소로도 쓰이게 될 다목적 공간이 될 것이다. 그곳이 의미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그 집에 얼마나 많은 애정과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장애우의 재활 자립생활을 돕고자 하는 큰 뜻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를 불태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사를 앞두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이 일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등 많은 생각들이 나를 따라다닌다. 조용하고, 한가로웠던 시간, 때론 너무나 여유로워 지루하기 까지 했던 생활에서 분주하고 바쁜 생활로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활시위가 날아올라 과녁 정 중앙을 맞추듯이 상록수의 시작도 꿈을 향해 똑바로 날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두려움을 밀쳐내 본다. 이제 조금씩 조금씩 활시위에 힘이 들어가고 팽팽히 당긴 활시위가 이사와 함께 쏘아 올려질 것이다. 그럼 활 시위는 힘껏 날아오를 것이다.
상록수의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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