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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5 10:08

꽃동네사람들

조회 수 2252 댓글 0

나씨

본동의 나씨.
어머니 산소에 가기 위하여
그는 걷고 있습니다.

나씨는
일년 동안 자신의 대소변을 치우는 봉사자를
젊은 나이에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나씨는 누워서 몇 천 번씩
또 다시 몇 천 번, 힘이 다 할 때까지
힘없는 다리를 운동하며 일어섰고
휠체어를 잡고 걷게 되었을 때
지팡이까지 버렸을 때
그의 아픈 노력을 기적이라 했습니다.

나인영씨가
척추결핵으로 입원한 얼마 후
암으로 같은 병원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시는 어머니를, 누워 배웅하면서
주고 싶다는 생각만큼이나
어머니 산소에 가고 싶었습니다.
가망이 없는 나씨는 꽃동네로 오게 되었고
자신의 대소변을 치우는 봉사자들에게
고깃국만 달라고 떼를 쓰며
어머니 산소에 가고 싶었습니다.

넓은 꽃동네를, 운동장 삼아 걷는 지금도
어머니 산소에 간다고, 허락을 얻으랴 하면
다리가 부러져 여러 달을, 하리를 또 다쳐
아직도 다 낫지를 않았는데
오 년 동안의 겨울은 길고도 서러웠습니다.
또 알 수는 없지만
내년 봄에 만큼은
나인영씨
자신을 일으켜 걷게 해 주신
어머니 산소에
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 5

올바른 것으로
충분합니다.
올바르다,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올바르다면
인내하는, 올바른 당신이
될 테니까요.

작은 다툼에
주의하십시오,
작은 다툼이더라도
상대를 힐난하는 마음은
당신 영혼에 상처를...
남의 티끌을 들춘
들보의 상처를 입게
될 테니까요.

아무리 당신이 옳다하더라도
남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미워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옳다면
가만히 참으십시오.
언젠가 당신도 잘못했을 때
누군가가 참아준다면,
그때야 당신이 옳았던 것입니다.


아기

여름 어느 날
귀동 할아버지 동상 밑에
보자기에 싸인 아기가 있었습니다.
기저귀와 젖병, 아기용품 몇 개
그리고 심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잘 생기고 복스러운 사내 아이
복덩이 굴러 왔다고
애덕의 집 식구들 좋아 했는데-

몇 년 전
노인 요양원 공사 때, 추운 겨울 날
포대기에 싸여 버려진 아이는
갑갑했는지 포대기에서 기어 나와
온 몸에 동상을 입은 채 발견 되었는데-

십만 원짜리 죽었어.
본동의 농담 같은 할아버지 말처럼
복덩이 아기는 얼마를 못 살고 죽고 말았는데-
하늘나라로 간 아기는
그래도 여름날에 자기를 버린
세상의 엄마가
얼마나 불쌍할 것인지.


사랑 6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늘의 시작
용서는 이 땅의 끝,
사랑하는 이와
용서할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둘이 당신에게서
하나가 될 때
하늘과 땅의
영원하고도
위대한 화해입니다.
이 땅의 용서는
영원토록 하늘에서
사랑입니다.


교환법칙

수많은 뭇 여성들로부터 사랑 받던
흑백영화 시대의 배우 샤를 보아이어는
오직 한 여자
그의 아내만을 사랑했다 합니다.
아내가 암에 걸려 죽자
샤를 보아이어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구원의 집 의무실 이름 모를 자매는
생긴 것은 목침 같고 죽지 하는 듯 일을 해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지만
수많은 이들의 병과 상처를 돌보아 왔고
외진 곳에 핀 들풀처럼 눈여겨보는 이 없어도
그는 생명의 다하는 날까지
그 봉사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 갈 것입니다.

-풀검의 교환법칙-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은 남겨 놓고 어떤 것을 가져갑니다.’


사랑 7

힘든 일을 하는 것
어렵고 고된 일
남이 안 하는 험한 일을
인내하며 참고한다는 것은
많은 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지어야 할
짐의 무게를 대신 지기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면
어렵고 힘든 일을
묵묵히 하십시오.
당신의 그 큰사랑
알아줄 이 있을 테니...


배영희씨의 시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사을 위해서만
쓰여 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 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고아로 자라
열아홉에 뇌막염을 앓은 후
앞 못 보는 전신마비 장애우가 된
배영희씨의 시입니다.
놀라운 이 시를 보며
나는 부끄럽습니다.


사랑 8

당신도 몰래 당신을 보살폈노라
깜박이는 등불도 별만큼 여기시는
萬有의 사랑이신 그이가... .


오이남씨

비가 몹시 오던 날, 하늘나라로 간
오이남씨
당신이 가시던 날, 하늘은
기쁨의 폭우와 뇌성, 춤추는 거센 바람으로
반기었지만
우리는 무서웠습니다.
가시면서까지 안구 기증을 하시려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실려 가는 오씨를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우리는 무서웠습니다.
소말리아의 영양실조 어린이보다
마르고 오그라진 팔과 다리
시장의 개고기를 연상시키는
뼈가 드러난 욕창이
고통을 감내하는 그 무언과 무표정이
우리는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당신의 대속 앞에
우리의 죄는 참으로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걷기는커녕, 평생 서 보지도 못하신
당신의 天刑 앞에
사과 한 알 생겨도 기뻐하시며 오래 지니시던
그 무욕 앞에
당신의 똥오줌 몇 번 치우고
만족한 우리는
당신의 일생이, 당신의 그 대속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사랑 9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말한다.
미안해...
그래, 나도 안다.
나 역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으므로...
사랑은
둘만이 소유하기엔
힘이 부친 것이라는 것을... .


젊은 엄마

젊은 엄마 옥진씨는 꽃동네로 왔습니다.
군산에서 운수업 하는 남편과
갓 태어난 윤수를 멀리 두고
꽃동네로 왔습니다.
친구 오빠 병원에서 윤수를 낳다가
뼈를 잘못 건드려
전신에 힘에 빠지는 병에 걸려
남편에게, 누구보다
갓 난 윤수에게
짐만 되는 엄마가 될까봐
아무도 모르게 꽃동네로 왔습니다.
처음 꽃동네에 와
애덕의 집에서는 병자 취급을 깍듯이 받았는데
심신 장애자의 집이 개원되어 옮겨 와서는
구원의 집에서 더 중증인 장애우들이 옮겨 와서는
그들의 수발을 들지 않을 수 없다며
휠체어에 앉아 체념처럼 웃습니다.


사랑 10

가슴에 담은 채
끝까지 가는
표현치 않은 사랑은
애달 퍼라.
세상을 그냥
깨끗이 지나쳐
함께 돌아가는
그 사랑은 아름다워라.

사랑은
모두의 이름으로
희생과 용서만큼의 가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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