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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5 10:36

꽃동네사람들

조회 수 2358 댓글 0

사연들

딸 하나 없이 지아비 여의고
어디선가 여관을 하며 살았다는
애덕의 집 임씨 할머니.
혼자 외롭게 사시는 고모님이 걱정된다면서
내왕하던 조카님이
어느 날, 갑자기 늙어 혼자 고생 마시고
편한한 데로 모시겠다고 해, 고만 와 보니
그 후로는 조카님도, 여관도 종무소식이라며
허리가 끊어지게 아파, 허리만 안 아파도
살겠다는 애덕의 집 임씨 할머니.

경추를 다쳐
목부터 발끝까지 굳어져
항상 누워 지내는 구원의 집 이씨 아저씨
다행히 손만은 움직여
침대에 도르래, 끈 등으로 장치를 해
가금 일어나 목발 짚고 서 있는 것이 유일한 운동인데-
서울서 집하나 가지고 있어, 도망 간 아내를 기다리며
세 놓고 살았는데, 셋방 든 아주머니가
주인집 아저씨가 너무 안 됐다면서
꽃동네 가면 치료도 받으며 편히 지낼 것이라고 해 왔는데
부랑자 수용시설이라
보호자 없이는 내 맘대로 나갈 수도 없고
또 보내준다 해도 꼼짝도 할 수 없어
그만 집하나 있는 것마저 뺏기고 말았다는
천애불구의 이씨 아저씨.


봉구

꽃동네 시금석이 되신
귀동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의 한 벌 뿐인 누더기 옷을
신문기자들이 사진 찍어 갔다고
때가 꾀죄죄한 한 벌 옷만을 입는 봉구는
꽃동네 장애병원의 식구들의 옷
피고름에 찌든, 대소변에 젖은 많은 빨래를
세탁하면서도 한가롭게 삽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 이라면서도
십자가 고상을 항상 목에 걸고 있는 봉구는
얻어먹고, 건강이 안 좋은 가족들이 무슨 담배냐, 는
오신부 말씀에 담배를 닥 끊고는
담배 태우시는 신부님 곁에 슬며시 가서는
신부님은 왜 담배를 태우시냐, 고
그렇게 한가롭게 삽니다.
남들이 말하는 모자람이
봉구를 여유롭게 합니다.


사랑 42

삭막한 들판에
들풀 중, 들꽃을 심으시어
아름다운 것같이...

저 어두운 창공에
밝고 맑은 별들,
반짝이는 것같이...

무관심한 세상에도
따뜻한 이웃을 곳곳에
살고 있어 사랑과 기쁨을
나누니...


사랑 43
-틈새

영원불변의 세계도
아주 작은 틈새가
있다.

그것은 인류조상인
아담의 지적관심과
관련된 것이며,

영원한 진리를
엿볼 수 있는 '틈'이며

현재와 유용인
상수(常數)가
흘러나오는 '새'이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수렴되는
메꿈을 전제로 한
틈새이다.


어머니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꼭
구원의 집 19호실 앉은뱅이 김씨를 씻기는
주름투성이 할머니는 구원의 집 이층 5호실
김씨의 어머니입니다.
항상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앉아 있는
김씨는 갈 데 없는 이층 할머니의 외아들
남자와 여자가 나누어져 있어 층계를 내려오며
도리질해대는 사십 넘은 아들의 얼굴을 씻기며
바퀴 달린 널빤지를 타고 혼자 변소 가는
아들이 대견합니다.
구원의 이층 5호실 주름투성이 할머니 곁에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딸이
다행히 한 방에 누워 있습니다.
묘 자리를 잘못 써 이 모양이 됐다면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오늘도 그 어려움을 살아 부치고 있는
앉은뱅이 아들과 옴짝도 못하는 딸의
죄스런 어머니.


사랑 45

초는 타서 없어지나
촛불의 빛은
어둠의 길을 곧게 하며
제 곳으로...

사랑의 행위는 설혹 잊혀져도
사랑만은
받는 이들의 기억으로
하늘에 씌어지고... .


자매

자매가 있었습니다.
크고 예쁜 언니와 자고 안경 낀 동생이
예쁜 언니가 사랑을 베풀고자 간호사가 되었을 때
작은 동생은 꽃동네로 왔습니다.
고통과 더불어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베풀는 사랑도, 함께 하는 고통도
어렵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무렵
꽃동네에 인곡 자애병원이 생겨서
언니도 꽃동네로 왔습니다.
결핵병동에서 봉사하던 예쁜 언니가
그들과 함께 환자가 되어 빨간 피를 토해 낼 때
작은 동생은 묵묵히 수도자의 흰 머리 보를 썼습니다.
동생이 순명으로 마음의 아픔을 대신 얘기 했을 때
언니는 비로소 하나 되는 사랑
그 깊은 뜻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하느님
따사로운 꽃동네 묘지 한 쪽에
작고 예쁜 자매의 무덤 봉우리를 지켜 봐 주소서
멋 훗날.


사랑 46

여유만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에너지를 잃은 만
빛을 내는 물질만치도,

자기의 희생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사랑 47

한번은 어차피
다 죽어 가는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은
숙련된 의사로도
기적 같은 일이 될 테지만

죄로 죽어 가는 영혼을
열정으로 깨우쳐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은
사랑과 믿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 일이며,
사랑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형제

반포의 작은 아파트에
우애 좋은 형제가 살았습니다.
지체부자유자인 형을
동생은 무척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동생이 대학입시 치던 해
형은 자신을 꽃동네에 버려 달라고 했는데
울면서 동생은, 형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그 해 동생은 대학에 못 들어갔지만-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동생은 두 달에 한번, 형을 보러 꽃동네에 옵니다.
형이 별 말이 없으니
동생도 할 말이 없어
두 서너 시간을 그냥 지내다가
심신 장애자의 집에 형을 두고
동생은 반포의 아파트로 돌아갑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부모는 꽃동네에 오지 않습니다.


베드루

심하게 말을 더듬어 답답한 베드루는
새벽 네 시에 이러나
구원의 집 식구 오 백 여명의 밥을 짓습니다.
가방~ 공장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을 하는 것은,
유일한 베드루의 희망과 꿈의 표현입니다.
목 잘린 누런 고무장화를 신고 발을 질질 끌며 걷는
베드루를 그의 형들은
꽃동네 기도회 때 트럭에 싣고 와서는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치매인 베드루 어머니 모르게-
귀동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슬피 운 베드루는
할아버지의 벗이자 아들 모양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꽃동네 기도회 날
우연히 베드루를 알아 본 옛 동네 어른들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베드루는 울지도 더듬지도 않았습니다.
하늘 한번 얼핏 보고는
누런 장화코만 내려다보았습니다.
다음 날도 베드루는
목 잘린 장화를 질질 끌며 새벽밥을 지었습니다.


사랑 48

사랑은
고통을 기쁨으로
번역합니다.
죄를 용서로
해석하며,
가난을 풍요로
번역합니다.
나눔을 더함으로
해석합니다.
사랑은
천국의 번역
저마다가 방언인
사람들로부터... .


어머니 2

멀쩡한 아들놈들은
지들 호적 파 가지고 가버리고
그 덕에 동사무소에서 겨우 주는 쌀 타 먹고
살지라오.

서른 댓 된 놈이
침 질질 흘리고 밥도 지랄같이 먹고
팔 하나는 어줍고, 하나둘도 모르고
그라고 장남이라요.

한 십년 뒤에나 오랍디오
걱정은 근게 내가 죽으면, 그 못난 것이
무슨 설움으로 살거나 하는 거지라오

누가 꽃동네에 가면
못난 어미, 못난 자식을 돌봐 줄 것이라 해서
멀리 전라도에서 왔다는 초로의 할머니

그런 사람이 많다며
어줍은 자식만을 꽃동네 앞에 버리고 가면
자식만은 챙겨 줄 것이라 하자
어떤 때는 당신도 그 자식이 미웁다며
남들은 어떻겠냐고 말을 잃습니다.

해는 지는데, 다시 돌아갈 길은 먼데
이제 소망을 잃은 할머니
먼 산만 보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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