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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시립병원 이야기다.

낡은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그 병원 2층 특별병실에 죽을을 앞둔 중환자 7명이 누워 있었다.
병실에는 창이 하나밖에 없다.
그 창가의 침대는 지미라는 결핵 말기환자의 자리였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창 밖에 보이는 경치를 다른 환자들에게 매일같이 알려주곤 했다.

『오늘은 어린이들이 소풍가는 날인가 보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가방을 어깨에 맨 아이도 있고, 즐거운 듯이 손에 돈 가방을 흔들어 보이는 아이도 있다.
어, 저 여자 애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데 여간 귀엽지가 않구나.
애들이 짝지어 손을 잡고 껑충껑충 뛰니까 아마 선생님이 그러지 말라고 야단치는 모양이야.
어이구, 나비 한 마리가 한 어린애 머리 위에서 춤을 추는구나.』

이렇게 생생하게 바깥 이야기를 알려주는 지미의 얘기를 들으면서 환자들은 뭔지 모르게 마음이 흐뭇해져 잠시나마 아픔을 잊곤 했다. 지미가 어쩌면 얘기를 꾸며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하는 환자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지미로부터 창 밖의 얘기를 들을 때가 어쩌면 다시는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할 처지의 환자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 추운 겨울을 맞은 어느날
아침에 환자들이 잠에서 깨었을 때 지미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그러자 톰이라는 환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간호사를 불렀다.『오늘부터 내가 창가에서 잘테니까 내 침대를 지미 자리로 옮겨주오.』
창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그 곳은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차례가 있었다.
톰은 그 차례를 무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그의 성품이 거칠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반대를 할 수가 없었다.

톰은 창가로 「이사」가면서 다른 환자들에게 호기있게 말했다.
“난 지미처럼 창 밖의 경치를 너희들에게 알려주지 않겠다.”

톰은 창가로 옮겨 눕자마자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벼봐도 지미가 얘기하던 그 아름답던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낡아빠진 창고의 검게 그을린 벽돌담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그동안 자기를 감쪽같이 속여온 지미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창 밖을 내다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왜 지미가 매일같이 거짓말을 해왔는가를 짐작하게 되었다.

지미는 다른 환자들이 죽는 날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삶에의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일부러 보이지도 않는 바깥풍경을 그토록 아름답게 꾸며대며 들려주어 왔던 것이다.
톰은 한참동안 넋을 잃고 멍하니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새삼스레 지미의 고마움에 뭔가 거칠었던 자기 마음 속의 독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다른 환자들을 향해 말했다. 『난 너희 녀석들에게는 절대로 바깥 풍경을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 혼자 재미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말해주는거다.

간 밤에 눈이 내렸는지 온통 은세계가 되어 있다.
저기 신나게 눈싸움을 하는 애들이 있고, 이 창 바로 밑에서는 열심히 조막손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말하자 어쩐지 환자들의 얼굴에 생기가 감도는 것도 같았다.

톰은 더욱 신이 나서 애들의 뛰노는 모습을 꾸며 나갔다.
이 얘기를 어디까지 믿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삶의 어려운 고비를 이겨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나라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라가 어지럽고 속속들이 썩어 있다해도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오늘의 괴로움을 견디어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의 상인』이라고까지 말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 지도자는 자격을 상실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처칠의 경고이다.

홍사중/문학평론가


몽롱이의 블로그 시립병원의 지미와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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