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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8 20:29

사람

조회 수 2970 댓글 0
오랜만에 찾은 올림픽공원엔 온통 푸르름이 넘치고 있다. 10년 전쯤만 해도 삭막함마저 느끼게 했는데... 아름드리 기둥을 자알하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있노라니 보이지 않는 세월이 지난 흔적이 눈에 확연히 띄는 것이다. 세월은 무심히 흐르지만, 자연은 그 세월속에서 그렇게 성장하고 변하느가 보다.
그 세월의 껍질을 벗겨 해복한 추억을 더듬는다.
70년대초에 교육대학을 다닐 때였다. 청극공단여자근로자들을 위한 야학 교사로 봉사를 한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청소년드은 가정이 어려워 중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낮은 임금을 받으며 공단에 취직을 했던 때이다.
어느날 저녁 공부를 가르치는데 일찍 끝내자고 졸랐다. 여느 날엔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1시간만에 수업을 마치자고 하였다. 영문도 모르지만 처음 있는 일이라 일찍 끝내고 교실문을 나서자 중국집을 가자고 하며 5명이 따라 나섰다. '배가 고파 그러겠지, 짜장면이라도 사달라는 뜻이겠지'하곤 함께 중국집을 들어섰다. 내가 주문하기도 전에 대표격인 여학생이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먼저 주문하였다. 잠시후에 짜장면 세 그릇이 식탁위에 놓여졌다. '사람이 여섯 명인데 세그릇만 나오다니.. 또 가져 오겠지..' 생각하며 기다렸다.
여학생들은 가방에서 보름달 빵 2개를 꺼내놓고, 양초를 꺼내어 불을 밝혔다. 짜장면 한 그릇은 내 앞에 놓고 두 그릇은 자신들 앞에 놓았다. 그리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객지 생활을 하느라, 음력 날짜가 가는 줄 몰라 나는 그 날이 내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학생들은 어찌 알고 내 생일 파티를 마련했을까?
여학생 5명은 모두 젓가락을 들고 두 그릇의 짜장면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보름달 빵 두개를 모두 나에게 건네주며 먹으라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요즘 간식처럼 흔히 먹는 짜장면은 특식이었다.
그러나, 짜장면 한 그릇씩을 사서 먹지 못할 만큼 어려운 학생들이 마련해 준 나의 생일 파티!
호주머니를 털 요량으로 세 그릇을 더 시키자. 나누어 먹으면 된다는 십칠팔세 그 여공들, 아니 야간 학교 학생들 앞에서 부그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들은 굶어도 가르쳐주는 선생의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는 그 사랑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무엇에 배가 부른가
사람은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난 영어, 국어를 가르쳐 주었으나, 학생들은 나에게 사람은 사랑을 먹고 심는 동물임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도 흐르는 눈물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무는 흐르는 시간을 먹고 자랄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고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
상록수 독서회도 두 그릇의 짜장면이라도 다섯명이 나누어 먹겠다는 난 배고파도 이웃에게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모임이길 기도한다. 그래야 무럭무럭 자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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