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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읽고

오수미

두 번의 이혼 후 세 번째 결혼을 한 중년의 여성의 고백적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전쟁과 피난 가난한 기지촌 생활과 세 번의 결혼...
유난히 부끄러움을 탔던 소녀에서 세 번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말하는 변해버린 자신...
친구를 만나면서도 우정에서가 아니라 남편이 사업에 필요한 고위층 간부 아니면 세리의 남편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여 옛 친구를 만나보게 되는 중년의 여인...
이 작품이 쓰여질 70년대나 오늘날이나 그런 모습은 별반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책속에 그녀의 삶이란 참으로 고단한 것일텐데 담담히 현실에 임하는 모습이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 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자기 피알 시대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표현할 때도 당당히 공주병 왕자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 또한 많은 현실 속에서 부끄러움이란 좀 어색하고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마지막 부분에 이 중년의 여인은 일본인 관광객에게 관광안내를 하는 안내원이 소매치기가 많은 곳이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 학원가에 부끄러움을 가르친다는 프랭카드를 달고 싶다고 그게 어렵다면 손수건이라도 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왜 하필 일본인 관광객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자신이 잃었던 굉장한 것을 다시 찾은 듯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뭐 굳이 그런 설정을 한 것이 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제시대로 쌓인 패배의식 같은 것이 내제되어 있어서 일본인들이기 때문에 더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매치기가 있다는 것은 자랑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싶었다.
나 또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지금은 어릴 때보다는 나아진 편이지만 아직도 부끄러움을 타고 내 자신에 자신 있고 당당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의 문제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당당함...
부끄러움이란 것 자체가 스스로를 위축시킬 때가 많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부끄러움은 순수함의 회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잃은 순수함 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 사랑 우정의 회복...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라는 단편은 결혼관이나 삶의 가치관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나는 부끄러움 보다는 당당함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2 한일 월드컵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뭉쳐 얼마나 아름다운 응원 문화를 만들어 냈는지...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자부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바르게 모두가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
자신을 볼 때나 타인을 볼 때 나쁜 부분 보다 좋은 부분을 먼저 발견하고 그 중에 나쁜 부분은 고쳐나가는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느 곳에나 문제는 산제해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문제로만 보고 부끄러워만 한다면 늘 그 자리 아닐까?
장애를 가지게 된 후로 난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육체의 장애를 부끄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드러낼 수 있는 당당함...
뻔뻔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은... 그런 당당함이라면 근사하지 않을까?
모방 작품 쓰기를 한다면 나는 “당당함을 가르칩니다.” 라는 작품을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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