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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송년의 밤이 곳곳에서 벌어질 때이다.
며칠 전 나도 대학동창 모임엘 나갔다왔다.
입학 당시 35명 정원에 여학생은 단 세 명이었는데, 둘은 CC끼리 결혼했고 나 역시 CC는 아니나 고교서클서부터 알던 동갑 남학생한테 묶였으니,..알만 하다.
어쨌거나 반 너머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이날따라 드라마 연출가로 지난 해 <하늘이시여>를 맡아 했다는 동창 이 영희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을 했다. 의례 술 마시며 떠들다 보면 어떻게 사는지 근황도 모르는 체 헤어지게 되는데,.. 동창모임이 좀더 서로의 근황과 함께 삶의 한 단면도로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던 동창들은 그 자리에서 동의하고 한적한 중국집 방으로 들어갔다.

나 같은 경우, 외국엘 나갔다 들어왔다 반복하다보니, 동창들 근황도 잘 모른 채 겉웃음만 짓는 실정이라 실제 그들의 그간의 삶이 어떠했는지, 무슨 일을 하며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당연히 궁금하지만 차마 들어내 묻기 또한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각자 10분간씩 이야기하기로 하니, 의외의 어려움을 겪어낸 친구들의 이야기도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제일 가슴 아프면서도 어이없고 황당했던 사건을 겪은 남자동창에 대해선 집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맘 언저리를 맴돌았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늘 주변을 웃기는 신통한 재주가 있는 작은 몸집의 친구인데, 남자고교에서 여선생들을 누르고 단연 인기 1위를 달리는 선생님이라니, 그의 재주를 알 만하다.
그럼에도 그 친구의 밝은 웃음 뒷면에 그런 아픔이 도사리고 있을 줄 누가 알까.

당시 뉴스에까지 나왔던 사고를 말해보면,..
학교교정에 세워둔 그 친구 차가 시동이 안 걸려 동료선생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교감선생님까지 나와 밀어준 게 하필 하교하는 학생들을 덮칠 줄이야! 그 바람에 삼년 간 스무 번이나 법정에 섰으며 보상 문제로 단 하나 살던 집을 팔고 산동네 월세로 내몰려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겪은 정신적 고통, 경제적 어려움, 등 이루 말 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다친 학생들의 부모님들로부터 조폭을 동원한 피해보상 등은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빚과 사회적 욕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가는 비굴한 가장이 될 수 없어 견뎌냈다고,. !

돈이 될만한 건 다 팔고 빌릴 수 있는 데까지 다 손을 내밀어 피해보상액을 만들어내면서 산동네 연탄을 피우는 동네 월세방으로 옮겼고 최대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그 월세 집 방 하나를 다시 학생들에게 세를 주고 연탄아궁이마저 세 개 중 한군데만 피우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뒤늦게 팔린 집값을 받아 돌아오던 날, 일이 다시 터졌다.
그 날이 마침 토요일 오후라 은행 문이 닫혀 그 현금뭉치를 갖고 돌아오는데, 조카가 갑자기 병원엘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아 그 돈을 평소 불을 넣지 않는 연탄아궁이에 넣고 병원으로 갔다는 것,
(이 때부터 난 왠지 모를 조짐에 불안해졌는데...애구!. 천상병시인의 장모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

하필 그날따라 이 친구네 집안형편을 잘 아는 세 든 학생들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이 친구네가 걱정되어 빈 방의 온기를 넣어준답시고 바로 그 돈 넣어둔 아궁이에 연탄불을 피웠다는 것!,.
평소 쓰지 않던 아궁이인 것을 그들이 알 리 없으니, 그 다음은 어땠는지, 더 말 안해도 알 일!! 그 친구 부인이 집으로 들어서면서 연기냄새를 맡았고 직감이 빠른 여인네라 바로 급하게 물을 쏟아 부었지만,....아뿔싸, 이미 3분지 1은 타들어갔으니,..

너무 황당해서 듣는 우리들도 일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모두 그 자리에서 젓갈 질을 멈추고 소릴 질렀다.
“어떻게!!”
엎친 데 덮친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으므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으므로,..!

더군다나 현 은행장인 동창이 그 놀란 상항 아래서 한 술 더 뜨는 소리를 냈기 때문에,,,
“한국은행에서 고스란히 불탄 재를 줄자로 재어서 그 값을 셈해 돈을 돌려주는데, 하지만 물을 부어 버리면 측정이 안돼서 오히려 다 찾지 못할 걸....”
“..악,, 이를 어째..”

우린 다시 한 번 소릴 질러버렸다.
이미 몇 년 전 지나간 이야기였음에도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찾았나?”
우린 모두 그 친구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 친구 왈, “그러게, 당시는 그걸 몰랐지, 쩝!... 그러나 다행히 난리를 치는 우리 부부를 보고 몰려든 이웃사람들이 한국은행 다니는 사람을 소개해줘서 비스름하게 찾아 받았지.

없는 중에 또 뭉텅 잘라 먹혀 정말 벼랑 끝에 몰렸지만, 그 끝없을 것 같은 절망의 동굴 속을 어느새 빠져 나왔더라니깐, 아직 빚이며 집 하나 없이 힘들긴 하지만, 학교에선 늘 웃기는 선생님으로 인기 짱이고,..이러면 된 게 아니겠어, 미래가 확실히 있으니깐, 아직 조퇴고 명퇴고 당할 일 없는 가장이니깐 말야, 안그래? “

얼마 전 우리 동창들끼리 소설집을 출판했었다.
작년에 췌장암으로 죽은 서 용범 동창의 유고집이었는데, 가족들을 대신해서 우리끼리 제안한, 서용범의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한 출판사업에 대해 그도 당연히 선뜻 적잖은 기금을 내줬고, 재작년엔 대학교 발전기금을 우리 동창끼리 만들어낼 때도 군소리 없이 참여했었다.

이렇게 매 년 두 번씩 동창 모임에도 빠짐없이 밝은 얼굴로 참석해서 아무도 그의 그늘을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그를 위해 박수를 쳐주고 싶다.

대학 때부터 늘 재빠른 몸동작으로 분위기를 바꿔주고 웃음을 터뜨리게 하더니,.그렇게 힘든 순간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를 힘들지 않게 편하게 웃고 헤어지게 하는 그 친구의 배려에 마음이 싸해진다. 아픈 웃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

그야말로 그는 채플린에 버금가는 진정한 개그맨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아픔을 무겁지 않게 웃음으로 돌려놓으면서, 물밑 파장을 깊게 남겨주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우리들의 채플린이다.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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