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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아기 양>

그는 10년 경력의 푸주간 주인이었다.

양은 5분, 소도 20분이면 목을 따고 부위별로 고기를 자르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가 목을 딴 축생만도 수천이었고 손님들에게
"난 짐승 목 자르는 게 수박 자르기보다 쉬워요"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어린양은 도저히 도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끼 양을 찾는 손님이 있으면 "고것들일랑 더 자랄 때까지 놔두시고 다른 고기 드세요" 라고 얘기하곤 했다.

손님들은 안 그러다 요즘 들어 그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기 양'을 말할 때마다
얼마 전 태어난 자기 아기가 떠올랐던 거다.

곱슬곱슬한 머리칼과 까만 눈을 가진 딸을
그는 '아기 양' 이라 부르며 귀여워했다.

그러나 푸줏간을 찾는 손님의 수가 눈에 띄게 줄자 그도 할 수 없이 예전처럼 새끼 양고기를 팔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날, 다른 짐승들과 함께 아기 양 한 마리가 실려왔다.

그는 먼저 소들을 최대한 뜸을 들여 아주 천천히 도살하고 고기를 발라내며 아기양의 짧은 생애를 단 몇 분이라도 늘여주려고 애를 썼다. 마침내 아기 양 차례가 왔다.

그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쓰며
노래를 웅얼거렸다.
어린것은 버둥대며 저항할 줄도 몰랐다.

그는 손에 칼을 들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쩌겠냐, 이게 네 팔잔데…"

그가 다른 짐승들을 죽일 때 손에서 칼을 놓친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별일 아니야' 하던 그는 그만 혼비백산,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기 양에게 손을 댄 순간
갑자기 뜨듯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양은
제 목을 따려고 누르는 손가락을
제 어미의 젖꼭지인 줄 알고
혀끝으로 빨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삶이 주는 선물'/쥬네이드 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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