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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5 14:24

그들의 이웃

조회 수 2268 댓글 0

어느 시인 1

골목 구석에 버려진 것,
덧칠이 벗겨진 부분의 형상을,
떠돌다 그만 갇힌 구름이라 말하고,
녹슨 경첩을 자신이라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동식물들은 죽음으로
먹이가 된다.’
하찮은 죽음을
하늘의 빵과 연관시키는
그의 詩想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된 길이 있어
가도, 가도 먼 길이 있어...
슬프고도 외로운 방황으로
멀리까지 가는...’ 이라고 쓴
슬픈 운명의 그가 있습니다.

‘비 오는 날
꽃들이 얘기한다.
뿌리가 박혀
꽃들은 떠날 수 없다.
비가 그친 뒤
벌이 날아와 말한다.
너도 씨앗이 되면
날아갈 수 있다.’고
종로거리 뒤편 어둡고 외진 쪽방에는
지체장애인, 시인 그가 소망에
살고 있습니다.
‘’-지체장애인 시인의 시 구절.

사랑 63
-빈 무덤

領聖體 때, 텅 빈 감실
그와 같이 저희 마음을
열어 비우게 하시고
십자가상, 당신 박힌 손
그와 같이 저희 두 손을
활짝 펴 가벼이 하시고
고향 나자렛에서 버림받은
낯 선 이웃으로, 당신을 따라
멈추어 자리하게 마시고
마구간구유, 그 낮은 자리
약한 저희와 함께 하심이니
저 스스로 낮게 하시고
맨 처음, 저희를 부르심에
모든 것을 당신께 응답한 뒤
스러져 부활로 선 자리

빈 무덤이게 하소서.


쪽파

시장을 지나치다
쪽파 한 단 샀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깨끗하게 다듬은
천 원짜리 쪽파를,
어느 아줌마가
가격만 묻고 지나치기에
샀는지 모릅니다.
시장거리가 쓸쓸해 보입니다.

꽤 많은 쪽파를
들고 오면서 생각합니다.
가격만 묻고 간
그 아줌마에 대하여,
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가 일일이 다듬은
쪽파를 천 원에 사기가
아줌마로선 미안스러워
묻고는 갔을 거라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집니다.


사랑 64

가냘 퍼
작은 손만 한
새의 주검도
하늘의 영광을
가리킬 때,

우주의 은하들
'신의 손가락들'은
우리 은하를
가리키는 듯
멀어진다.

교만한 자의 죽음이
이 땅의 허무함을
고할 때,
영혼이 눈 뜰 제... .

'신의 손가락'-사람의 손을 닮은천체에
천문학자들이 붙인 명칭.



사랑 65

'가난한 사람이
이 세상 근본이다.'라는
어느 빈민운동가의 말씀처럼,

가난함이야말로
이 세상을 담는 빈 그릇
영혼을 떠받힙니다.


성모의 집 할머니들

가족이 없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는
성모의 집 할머니들.
자녀들은 제 갈 곳으로
다 떠났으니...
고즈넉한 마음의 텃밭엔
언제나 푸르게 싹 돋는
그리움.
겨울날의 보리 싹처럼
밟고, 밟다가
집 앞 채마밭으로 나와
푸성귀 잎을
갈퀴손으로 만지며
서로의 푸념을 마주하다가도
기도와 찬미노래로
딴 가족은 필요 없이
한 가족이 되어서는...
변치 않는 초록빛이
새 희망이 되어서는
하늘의 가족으로
미리 만난
성모의 집 할머니들.


사랑 66

우리는 알지 못하나
당신의 항구하심은
길고도 길다하는 세월에
머물지 아니 하시고
항시 높이만 자라하시기에
하찮은 우리를 들어올리십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나
모든 것을 하나로 누이며
갖가지 것들을 씻어
작은 샘으로부터 大海까지
낮고 낮은 이들을
사랑의 빛으로 부르시어
하늘 천장을 그을리는
교만한 자들의 정신과
대적케 하십니다.

저들은 알지 못하니
낱낱이 비구름을 쓸어 모아서는
어둡고 음습한 뿌리의 길로
되돌려 놓으실 적에
턱없이 가벼운 망상들을
소용돌이로 하여 무겁게 다룰 적에
저 초록생명 위로
투명한 당신의 언약
이슬의 영혼들이
하늘의 천장 위로 무수히
떠오릅니다.


유진이엄마

‘...이겨낼 수 있어요,
시련을 주실 만큼 주세요,
주실 만큼 주시고 거두세요.
했던 것이, 교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매달려야 했을 것을...
저를 아프게 하시지 어찌
자식을 아프게 하시냐, 고
매달리는 지금이 너무
후회가 됩니다.’

돈이 없기에
갑상선에 걸린 착한 딸
유진이를 살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느님께
애절히 매달리면서도
세상의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靈肉간에 지친 어머니는
진정 무슨 걱정을 할까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알리려는
평화방송프로는 미리부터
있었습니다.
그 시련을 전해 듣고는
적지 않은 이들, 저마다의
아픔으로, 새살처럼 솟아나는
관심도 이미 준비되었기에
못다 한 후회같이,
하나 둘 돈은 모아져,
유진이 치료비를 대면서
세상이 사랑으로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유진이어머니의
시련도, 아픔도, 후회도 아시며
유용하고 크게 쓰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사랑 67

가난한 이, 너머
죄가 많은 이...
죄 많은 이, 너머로
병이 든 이가...
병든 이, 너머에
힘이 든 이...
힘든 이, 너머는...
끝이 보이자 않아,
아!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에
이웃이었네...
사랑과 위로가 꼭,
필요한 그들의... .


多情이 아빠

장애인이 된 남편과 헤어진
엄마와 살게 된 多情이.
방학 때밖에는 아빠 곁으로 올 수가 없어
多情이 말대로 ‘잠깐의 재미인 친구들보다’
엄마를 대신하는 의미의 시간을
아빠와 보낸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 인가는,
아무나 알 수가 없다.
이름처럼 다정한 딸을 가진
이혼을 당한 장애인이 아니고는...
딸이 너무나 깨끗이 청소한 방에
휠체어를 밀고 들어올 수 없다는
아빠를 多情이는 안다.
여태껏 아빠의 방은 휴식처가 아닌
다만 험한 길의 일부였다는 것을...
혼자서는 샤워를 할 수 없는
아빠를 열여섯 살 딸이 샤워시키며
한낱 사치스러운 부끄러움보다는
인간의 조건이 결핍된 아빠를 위해
충족을 몰라도 정성은 다해야한다는 것을...
多情이가 엄마뱃속에 있을 때
발병한 우연찮은 불구아빠를 위해서
아무 것도 모르지 않을 엄마의 몫까지
多情이는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영원한 사랑의 이름으로 ... .


사랑 68

바라보십시오, 어둠을
깨달으십시오,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빛을
깨달으십시오,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이웃을
깨우치십시오, 사랑을.


아기, 지수가...

아기천사만 같은
지수가 끈임 없이
눈물을 흐리며
누워 있다.
무슨 죄를 죄었기를
태어나면서부터
뇌 기형과 뇌수종으로
서기는커녕 앉지도 못하고
오로지 누운 채로만...
마치 속죄의 그것인양
눈물만 흘리고 있다.

편한 자리에 앉기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욕심하며,
남보다 높이 서기를 좋아하며
남들 위에 서기를 주저치 않는,
많은 사람들 보시오!
당신들, 욕심이 빼앗아 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여기 아무런 죄 없으나
한 아기, 누워만 있는 것을...
또한, 끈임 없는 눈물로
당신들의 속죄를 대신하는 것을...

이제 여기 저기 탐욕의 눈과
비교의 그것들을 멈추시오.
이 아기, 고개조차 옴짝도
못하고 있으니... .


사랑 69

길어 대신 준비하신
당신의 침묵을 향해
아주 짧아 끝없는
잡다한 변명을 늘입니다.
당신이 펼친 자연스러움
허락하신 정신이라도
아무리 영혼일지라도
대대로 말씀하시고...
곳곳에 나누신 은유를
어찌 단 한마디
‘사랑’이라며
믿으라고 하시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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