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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차를 타고 달리다가
차창문을 열었는데 문득 코 끝으로 꽃내음이 느껴졌다
꽃바람이었다.!
가슴이 아린... 그리움 같은 향기...
한참을 킁킁거리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나 너무나 벅차게 좋을때 주책없이 흐르곤 하던 눈물이었다.
그럴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얼굴 할아버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울지 않았다.
이제 다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없는 영영 이별인데도
유난히 할아버지에게 냉정했던 나는
너무나 담담했고 죽음이란 것에 대한 실감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저 차갑고,,,, 독한것...."
우리집에 세들어 살덕 새댁 아줌마가 친구들과 아무렇치 않게 떠들고 노는 나를 보며 그러셨다.
할아버지가 떠나가신 자리가 내 맘 속에 이렇게 해마다 새롭게 그리움으로 젖는 자리가 될 줄은 그 때는 정말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주정뱅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몇병의 소주와 막걸리를 날마다 해치우고 취하시면 늘 중얼거리시며 끊임없이 세상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으셨다.
할머니를 괴롭히셨고, 자식들을 침들게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가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너무 이쁜 것,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보셨을때가 바로 그러실 때였다.
손으로 난몰래 눈물을 훔치시는 할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볼때마다 어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저 꽃이 저 이쁜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겐 왜 눈물나게 슬픈걸까?"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며 갸우뚱하던 어린 내가 자라서 이제는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가끔 내 속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푸른 도포자락처럼 결고운 하늘을 볼때, 금방 머리를 감고 나온 소녀처럼 촉촉한 향기 머금을 바람을 만날때, 달콤한 과일향 나는 아가의 살냄새를 맡을때, 퐁퐁~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만들어내는 고운 말을 들을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때...
그 아름다운 순간들에 여지없이 나는 할아버지처럼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다.!

그때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는지 이제는 온 가슴으로 알 것 같다.
아름다운 감동으로 온 가슴이 흔들리는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 '욕쟁이 술꾼'으로만 남아있던 우리 할아버지는 이제 내게 오래된 책 속에서 느껴지는 듯한 가슴 아린 그리움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맑게 울 줄 아셨던 나의 할아버지...
그 눈물고인 눈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고운 것을 보고 울 수 있는 가슴을 내게 물려주신 할아버지에게... 그리움과 사랑을 이 고운 바람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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